자카르타에 도착하자마자 옷부터 바꿔 입었다.
기내에서 입었던 긴팔 셔츠를 벗고, 얇은 반팔에 반바지 차림으로 숙소를 나섰다.
한낮 기온은 섭씨 33도에 육박했고, 해는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었지만,
이 도시의 기온은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당황스러웠던 건, 카페에 들어선 순간부터였다.
실내는 냉장고처럼 차가웠고, 에어컨은 내 머리 위에서 무자비하게 찬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보다 더 놀라운 건,
그 공간 안의 현지인들이 대부분 긴팔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람은 얇은 재킷을 걸치고 있었고, 심지어 머플러를 목에 두른 사람도 있었다.
나는 땀을 식히려고 카페에 들어왔는데, 그들은 오히려 체온을 지키기 위해 옷을 여미고 있었다.
자카르타의 실내 온도는 외부보다 훨씬 낮았고, 그 차이에서 오는 체감 충격은 여행자 입장에선 꽤나 강렬했다.
차가움은 ‘편안함’이자 ‘표준’이라는 인식
며칠 동안 자카르타의 다양한 공간—쇼핑몰, 음식점, 택시, 심지어 대형 마트까지—
거의 모든 실내 공간은 ‘에어컨이 센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에어컨이 없는 공간은 더운 것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공간’처럼 느껴졌고,
냉기가 퍼지는 정도에 따라 장소의 위생, 쾌적함, 서비스 수준까지 달라 보이기도 했다.
이곳에선 냉방이 단순한 온도 조절이 아니라,
공간의 격식과 신뢰감을 상징하는 기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은 어릴 때부터 에어컨에 익숙해져 있어 실내 냉방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없다고 했다.
오히려 외부에서 더위에 지친 상태로 실내에 들어오면
강한 냉기가 몸을 ‘초기화’해주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행자인 나로선 이 온도 차이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자카르타 사람들은 이 차이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긴팔, 스카프, 담요 – 냉방에 적응하는 생활 방식
재미있게도, 쇼핑몰이나 카페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고속버스를 탈 때는 기사님이 아예 담요를 나눠주는 경우도 있었고,
호텔 로비나 회의실에는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가벼운 외투가 구비되어 있는 곳도 있었다.
즉, 실내가 추운 것은 너무 당연하고,
그 추위에 맞게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일상적인 대응이었다.
나는 자카르타가 더운 나라니까 당연히 실내도 더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지인들은 실내에서 몸을 웅크리며 추위에 익숙한 자세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 문화는 냉방에 대한 기준 차이일 뿐만 아니라,
실내를 ‘공공의 공간’이 아닌 ‘냉방된 개인 공간’처럼 사용하는 생활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에어컨 바람을 피하기 위해 내가 스카프를 사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제서야 자카르타의 기온이 단순한 날씨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코드라는 걸 이해하게 됐다.
'문화충격 시리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네시아 금식 문화 - 무슬림이 아닌 나도 라마단을 체험했다 (0) | 2025.05.06 |
---|---|
언제 막힐지 모르는 도시 – 자카르타의 교통 체증은 일상이었다 (0) | 2025.05.02 |
자연 속에서 사는 발리 우붓 숙소 구조 (1) | 2025.05.01 |
우붓의 이동법 - 오토바이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간다 (0) | 2025.05.01 |
발리 종교와 일상 – 경계 없는 신성함 (1) | 2025.04.30 |
발리 우붓 제사 문화 - 매일 아침 제사를 준비하는 마을 (0) | 2025.04.29 |
영국 공연 관람 예절 - 조용한 감상의 나라 (0) | 2025.04.27 |
영국 슈퍼마켓의 반전 규칙 - 야채는 포장 안 되고, 우유는 4리터가 기본? (1) | 2025.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