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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격 시리즈

언제 막힐지 모르는 도시 – 자카르타의 교통 체증은 일상이었다

by daon-nuri 2025. 5. 2.

자카르타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나는 이 도시에 꽤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이자 동남아시아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
높은 빌딩과 쇼핑몰, 수많은 사람과 차량이 활기차게 움직일 거라는 상상을 하며
시내 중심지에 숙소를 잡았다.


하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첫날,
나는 자카르타라는 도시를 가장 먼저 차 안에서정지된 채로만나게 되었다.

 

도착한 날은 평일 오후였다.
차가 막히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길은 단순히막힌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움직이지 않았다.

 

한 시간 동안 차가 거의 제자리에서만 움직였고,
다 와 가요라는 기사님의 말은 거의 농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도시는 거대했지만, 이동은 느렸고,
자카르타에선이동 시간보다정체 시간이 일상을 구성하고 있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됐다.

 

자카르타 교통체증

 

정체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기본값

 

자카르타에서 교통체증은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 일상적인 배경이다.


모든 일정을 계획할 때 
이동 시간 30분 단위로는 부족하고, 최소 1시간 이상의 여유를 잡아야 겨우 맞춰진다.

단순한 도심 간 이동도 평균 1시간 이상이 걸릴 수 있고,
거리보다 시간이 먼저 떠오르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 무렵, 비가 오는 날에는 그 체감 체증이 더욱 극단적으로 느껴졌다.
도로는 빽빽하게 들어찬 차량들로 가득하고, 버스와 오토바이, 택시, 일반 차량이 서로의 틈을 비집으며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


거리는 살아 있는 듯하지만, 정지된 듯한 풍경.
한 번 정체에 걸리면, 목적지와의 거리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걸을 수 없는 거리, 대중교통도 버거운 현실

 

자카르타가 이렇게 차량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는
보행자 친화적이지 않은 도로 구조와 제한된 대중교통 시스템도 한몫한다.


보도를 걷는 일이 쉽지 않고, 횡단보도는 많지 않으며, 신호도 예측이 어렵다.
차량 위주로 설계된 도시답게,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임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차량이나 오토바이를 선택한다.

 

물론 MRT(도시철도) TransJakarta 버스 같은 대중교통 수단도 존재하지만,
그 범위가 아직 제한적이고, 도보 이동 없이 환승이 쉽지 않은 구조라
처음 온 여행자에겐 진입장벽이 꽤 높다.


택시나 그랩(Grab)을 이용하면 편하긴 하지만,
차량 호출 후 기다리는 시간과 정체 구간에서의 소요 시간을 감안하면
오히려 도심 이동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도시가 아니라 '차 안에서' 머무는 느낌

 

며칠 여행을 하다 보니 자카르타에서의 하루는 도시 구경이 아니라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으로 기억되는 경우가 많았다.


관광지가 멀지 않아도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예측하기 어려웠고,
길이 뚫릴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자연스럽게 차 창밖으로 풍경을 보거나
현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이 경험은 불편했지만, 동시에 자카르타라는 도시의 리듬을 느끼게 해줬다.


빠르게 움직이는 대신, 멈춘 속도에 익숙해진 사람들.
그 속도 안에서 대화하고, 기다리고, 때론 그냥 아무 말 없이 시간을 흘려보내는 문화.


자카르타의 교통체증은 단순한 문제라기보다
이 도시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상징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