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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격 시리즈

영국 슈퍼마켓의 반전 규칙 - 야채는 포장 안 되고, 우유는 4리터가 기본?

by daon-nuri 2025. 4. 26.

영국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동네 슈퍼마켓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상하리만큼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한국처럼 가지런히 정렬된 야채나 과일 진열대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양파, 감자, 당근 같은 채소가 그냥 박스에 담겨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비닐봉투에 담겨 있는 게 아니라, 고객이 직접 봉투에 담거나 맨손으로 골라 담아야 하는 시스템.
그 모습은 마치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경계 어딘가에 놓인 듯했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건 우유 코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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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짜리 우유는 생각보다 눈에 잘 띄지 않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2리터, 심지어 4리터짜리 우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카트에 담고 있었다.
처음엔 '이걸 다 마신다고?' 싶었지만, 며칠 뒤 나도 모르게 2리터짜리를 집어들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됐다.

 

이 글에서는 영국 슈퍼마켓에서 직접 체감한 생활 방식의 차이와 그 안에 숨어 있는 영국인의 소비 문화, 환경 인식, 식생활 습관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풀어보려 한다.

 

야채는 왜 하나하나 포장되지 않을까?

 

한국에서는 마트에 가면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이 비닐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특히 상추나 고추처럼 쉽게 손상되는 채소는 소량 단위로 정리되어 있어 바로 장바구니에 담기 편하다.

 

하지만 영국의 슈퍼마켓에서는 그런 포장 방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채소는 크기와 개수가 제각각이고,
직접 무게를 달아 계산하거나 개수대로 가져가는 시스템
이 기본이다.

 

이건 단순히 유통 구조의 차이만은 아니다.
영국에서는 환경 보호와과잉 포장 줄이기에 대한 인식이 강하고,
포장재를 줄이는 것이 소비자의 책임이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존재한다.


그래서 손에 흙이 조금 묻더라도, 모양이 일정하지 않더라도
그대로 진열해놓고 필요한 만큼 소비자가 알아서 고르는 구조가 보편적이다.

 

나도 처음엔 이질감이 컸다.
특히 장갑 없이 맨손으로 야채를 집는 사람들을 보면서
위생에 대한 의문도 들었지만,
며칠 지나고 나서야 이게 불편함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 인식되고 있다는 걸 이해하게 됐다.

 

영국 슈퍼마켓의 반전 규칙

 

우유는 왜 이렇게 크고, 이렇게 싸지?

 

영국의 슈퍼마켓에선 우유의 크기와 가격도 또 다른 충격 요소다.
한국에서는 1리터짜리 우유도 금세 상해서 버리는 일이 많은데, 여기서는 기본이 2리터, 흔히 4리터짜리까지 판매된다.

 

더 놀라운 건 그 가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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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터짜리 우유가 1파운드(한화 약 1,600) 이하로 판매되는 경우도 흔하고, 4리터는 오히려 단가가 더 저렴해진다.

이런 소비 패턴은 대가족 중심의 식문화와도 연결되어 있다.

 

영국에서는 하루 한두 번티타임에서 반드시 우유가 들어가는 차를 마시고
아침식사에도 시리얼과 함께 우유를 곁들이는 문화가 일반화되어 있다.


하루에 우유를 3~4컵 마시는 사람이 전혀 드물지 않다.

처음에는이걸 다 어떻게 마셔?’ 싶었지만, 며칠 생활하다 보면 냉장고에서 우유가 빠지는 속도가 꽤 빠르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큰 용량의 우유가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자리잡기 시작한다.
가격 대비 효율, 보관 방식, 소비 습관까지 모두 합쳐진 결과물이 바로 이 4리터 우유통이었다.

 

장보기는자주 조금씩이 아니라한 번에 많이

 

영국에서 장을 보다 보면 한국과의 또 다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소량 다품종 구매보다는 대용량 위주로, 한 번에 묵직하게 장을 보는 문화가 보편적이다.
우유, 식빵, 감자, 당근 같은 기본 식재료들은 거의 대부분가성비높은 대용량 제품으로 진열되어 있고,
대형마트에서도 대형 카트가 기본 제공된다.

 

이런 문화는 단지 소비 성향 때문만이 아니다.
차를 이용해 장을 보러 가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마트 자체가 동네마다 많지 않아 이동 거리가 있는 경우도 흔하다.
그래서 매일 조금씩 사는 대신 일주일치 식재료를 한 번에 사는계획형 소비가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런 장보기 방식은 단기 체류자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다.
특히 숙소가 공유 주방이거나 냉장고 공간이 제한적이라면 영국식 장보기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하지만 점점 적응하다 보면,

오늘 뭐 먹지?”보다이번 주엔 뭘 준비해둘까?”라는 사고 방식으로 바뀌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