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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충격 시리즈

영국식 건물 구조의 불편한 진실 - 아파트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by daon-nuri 2025. 4. 24.

영국에 처음 도착해서 가장 먼저 감탄했던 건 거리 풍경이었다.
빅토리아 스타일의 건물들, 고풍스러운 벽돌 외관, 세월이 그대로 느껴지는 창틀과 문손잡이까지.
마치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며칠 뒤, 숙소를 옮기면서 이 아름다움이 불편함으로 바뀌는 순간이 찾아왔다.


캐리어를 끌고 계단을 오르면서, ‘왜 이 건물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생각보다 많은 영국의 주거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특히 런던 시내에 있는 오래된 주택 개조형 아파트나 플랫(flat)들은
3
, 4층짜리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처음엔 단순히낡아서 그렇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영국식 건축 문화와 생활 방식이 반영된 구조적 특징이 숨어 있었다.

 

낭만적인 외관 뒤에 숨겨진 실용성 부족

 

영국의 많은 건물은 수십 년, 길게는 1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건축물들이다.
보존 가치를 인정받은 경우도 많아서 외관을 함부로 바꾸거나, 엘리베이터를 새로 설치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Listed Building(보존 건물)'으로 등록된 주택들은 외관뿐 아니라 구조, 창문, 계단 손잡이 하나까지도
함부로 바꾸는 것이 법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건물들은 도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중요한 자산이기도 하다.

 

문제는, 주거 공간으로서의 편의성은 후순위라는 점이다.
좁은 복도, 가파른 계단, 방음이 되지 않는 벽,
그리고 무엇보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구조는
단기 여행자에게 실질적인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짐이 많을 때, 장을 본 날, 비 오는 날에 이런 계단을 매번 오르내리는 건 단순한 낭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높은 층에 머무는 경우에는 이 구조가불편함그 자체가 아니라, 일상의고난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구조가 당연한 나라

 

처음에는 "왜 이렇게 불편한 구조를 그대로 두는 걸까?" 싶었지만,
영국 사람들에겐 엘리베이터 없는 건물이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그런 구조에 익숙해져 있어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일상이고,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 큰 이슈가 아니라는 인식이 강하다.

 

게다가 영국에서는 건물 자체를 수직적으로 확장하기보다는,
가로로 퍼져 있는 구조
가 더 흔하다.
고층 아파트보다는 2~4층짜리 건물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테라스 하우스나 플랫 구조가 더 보편적이고,
그래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것이 큰 불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면, 짧은 기간 머무는 외국인이나 관광객 입장에서는 이게 꽤 큰 생활 스트레스로 이어질 수 있다.
캐리어나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를 때마다,

현대적인 편의성보다 전통과 분위기를 더 우선시하는 문화가 실감나게 느껴진다.

 

영국식 건물의 불편한 진실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보존을 선택하는 태도

 

엘리베이터 없는 생활이 주는 불편함을 체감할수록 
영국이 얼마나 '보존'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인지를 알게 됐다.


단순히 오래됐다고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을 지키면서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방식이 이곳에는 자리잡고 있다

 

물론 최근에 새로 지어진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대부분 설치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건물조차 외관은 과하게 현대적이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고,
기존 도시 풍경과 어울리는 구조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이 도시 전체가 마치 하나의 문화재처럼 보존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엘리베이터 하나 없는 건물이 낭만의 상징이 될 수도, 생활의 불편함이 될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그 공간에서 얼마나 오래 머물고,

얼마나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