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겨울의 날씨는 상상보다 훨씬 더 습하고 차갑다.
하지만 정작 당황스러웠던 건 바깥 날씨가 아니라 실내에서 느끼는 냉기였다.
하루 종일 바람 맞으며 돌아다닌 후 따뜻한 집을 기대하고 들어섰는데,
오히려 실내가 더 싸늘하게 느껴졌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난방이 아예 꺼져 있는 집도 있었고, 난방을 틀고 있어도 방 안 공기 전체가 서늘하게 유지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처럼 온돌 문화에 익숙한 사람에게 이런 ‘차가운 실내’는 꽤 낯설고 불편한 경험일 수 있다.
특히 난방을 켰음에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추위가 따라오는 느낌은 실제로 영국에 머물러보기 전에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글에서는 단기 체류자 입장에서 경험한 영국식 난방 문화의 실체와,
그 이면에 깔려 있는 생활 철학과 건축 습관,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풀어보려 한다.
난방은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만’ 따뜻하면 된다?
영국의 대부분 주택에서는 중앙난방(central heating) 시스템을 사용한다.
보일러에서 온수를 데워, 방마다 설치된 라디에이터(radiator)를 통해 열을 퍼뜨리는 구조다.
하지만 이 방식은 한국의 바닥 난방과는 확연히 다르다.
바닥이 차갑고, 공기 위쪽만 살짝 데워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체감상 실내가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특히 전기세, 가스비가 비싼 영국에서는 필요한 시간에, 필요한 방만 난방을 켜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가족 모두가 거실에 모이면 그 방만 난방을 켜고, 다른 방은 아예 차갑게 유지된다.
심지어 어떤 집에서는 밤에 난방을 꺼두고 이불을 두껍게 덮는 걸 기본으로 여긴다.
한 번은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라디에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집주인에게 문의했더니, “밤엔 꺼져 있어요. 영국은 원래 그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밤, 이불 속에서 히트텍과 양말을 껴입고 잤다.
‘집이 따뜻하다’는 감각 자체가 완전히 다른 기준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체감하게 됐다.
“춥다”는 건 기온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
영국에서는 춥다는 말 자체를 자주 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
실제로 춥지 않아서가 아니라, 추위를 일상적인 불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두꺼운 니트, 실내용 양말, 무릎담요 등으로 대응하는 것이 당연한 생활 방식처럼 굳어져 있다.
게다가 난방비가 상당히 비싸기 때문에 실내 온도를 올리기보다, 체온을 지키는 방식으로 생활하는 게 보편적이다.
커피나 차를 자주 마시고, 옷을 겹겹이 입고, 손난로나 전기담요를 사용하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단기 체류자 입장에서는 처음에 꽤 당황스럽다.
“왜 이렇게 추운데 난방을 안 틀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때로는 숙소 선택 기준이 엘리베이터’보다 ‘난방 잘 되는 집’이 될 정도다.
이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추위에 약해서’ 힘든 게 아니라
생활 방식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불편했던 것임을 알게 된다.
보온보다 절약을 우선시하는 생활 철학
영국의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건, 기온 때문만은 아니다.
집 안이 따뜻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문화적 태도가 그 차이를 만드는 핵심이었다.
영국인들은 에너지 절약에 대한 인식이 높고, 필요 이상의 소비를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철학은 난방 방식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집 전체를 데우는 대신, 내가 있는 공간만 최소한의 열로 유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전기장판이나 온수매트 같은 제품도 널리 사용되지 않고, 온도 조절보다는 환경과 비용을 먼저 고려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처음엔 ‘왜 굳이 이렇게 살아야 하지?’ 싶은 생각이 들지만, 지속 가능한 생활, 환경 보호 등의 가치를 고려하면
이 불편함 속에 담긴 나름의 논리와 가치관도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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